영화 '아가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대사도 줄줄 외울 정도로 정말 많이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방구석 1열'에 박찬욱 감독과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정서경 작가가 출연했다.
둘 다 아가씨의 원작 소설 핑거 스미스를 엄청 재밌게 읽고 영화화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아가씨의 열렬한 팬으로서 읽기 시작했다. 또한 2시간 50분에 달하는 아가씨 감독판을 보고도 부족한 세계관을 더욱 음미하고 싶었다.
원작 소설과 영화가 얼마나 비슷하고 또한 다른 지도 알고 싶어서 바로 이북을 결제해서 보기 시작했다. 이북으로 읽으면 안 좋은 점이 두께나 분량이 감이 좀 안 잡힌다.
또한 핑거 스미스는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쪽수로 안 나오고 퍼센티지로 나와서 더욱 감이 안 잡혔는데 이북 기준 거의 9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소설이었다.
영화 아가씨와 거의 비슷한 초반 줄거리
아가씨와 비슷한 점이 매우 많긴 하나 크게 배경과 반전, 결말이 각색되었다. 배경은 1800년대 후반 영국 런던과 교외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하녀 수잔과 아가씨 모드의 시점으로 번갈아가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도둑 수잔과 사기꾼 젠틀먼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 모드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각각 하녀, 신사로 둔갑하여 모드의 대저택으로 입성한다.
수잔은 모드가 젠틀먼을 사랑하게 되어 같이 도망치기를 돕는 역할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모드와 수잔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둘은 서로의 마음을 외면한 채 각자의 계략에 따라 젠틀먼과 함께 모드의 삼촌으로부터 도망치고 모드와 젠틀먼은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식 후 모드를 정신병원에 보내고 재산을 가로챌 계획으로 알고 있던 수잔은 모드 대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모드와 젠틀 먼 만 수잔의 소굴로 오게 된다. 알고 보니 수잔의 패거리와 젠틀 먼, 모드가 수잔을 속인 것이다.
영화 아가씨와는 다른 핑거스미스 반전 및 결말(스포 포함)
수잔이 어머니처럼 여기던 석스비 부인에게 반전의 열쇠가 있었다. 모드는 석스비 부인의 친딸이었고 수잔이 모드의 어머니라고 알고 있었던 지체 높은 아가씨의 친딸이었다.
수잔의 친모가 수잔이 자기처럼 신분에 억압받고 살지 않기를 바라서 수잔과 모드를 바꿔치기했다. 18살이 되는 생일에 이 사실을 밝히고 유산을 수잔과 모드에게 반씩 나눠준다는 유언장을 석스비 부인이 갖고 있었다.
수잔의 재산까지 차지하기 위해 석스비 부인이 이 모든 계락을 꾸미고 수잔을 모드로 가장해 정신병원에 처넣었던 것이다. 가까스로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수잔은 모드와 젠틀먼이 자신을 배신한 것이라 여기고 분노로 가득 차 모드를 찾아 석스비 부인의 집으로 간다.
모드는 사랑하는 수잔을 속인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비열한 젠틀먼과 그의 패거리들을 경멸한다. 수잔은 모드를 죽일 생각으로 칼을 갖고 석스비 부인의 집으로 들이닥치는데 실랑이 끝에 모드가 젠틀먼을 살해하고 석스비 부인이 친딸 모드의 죄를 뒤집어쓰고 목이 메어 죽는다.
수잔은 석스비 부인이 죽은 뒤에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사랑하는 모드를 찾아 나선다. 모드는 삼촌 집에 있었는데 그 빌어먹을 잡놈의 삼촌은 다행히 죽었다.
삼촌은 앞에도 나오지만 변태적인 외설 수집광이었고 모드는 이런 더러운 책들을 신사들에게 낭독하고 있었다. 이 사실도 수잔만 모르고 있었는데 마지막 삼촌의 도서관에서 모드와 재회할 때 이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드가 수잔과 키스할 때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지만 사실은 모든 일련의 행위(?)들에 다 알고 있었던 숙녀라서 수잔은 충격을 받았지만 삼촌이 모드에게 이런 짓을 시켰다는 것에 더욱 분노하고 책들을 찢어버린다.
영화 아가씨에서나 소설 핑거 스미스에서나 이 부분이 가장 사이다이다!
마지막 아이러니는 모드가 이런 책들만 읽고 자라서 석스비 부인의 집을 떠나와서는 외설을 쓰는 작가로서 생계를 연명하고 있었다. 본인에게 이런 재능이 있는 걸 알았다며… 결국 수잔과 모드는 키스하면서 해피엔딩을 맞는다.
영화 아가씨에서는 히데코와 숙희가 후반부에 서로의 마음을 알고 계획을 바꿔 젠틀먼을 속이고 둘이 재산을 모두 갖는다. 그리고 아이를 바꿔치기했다는 석스비 부인의 반전은 사용하지 않는다.
감상평
책이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만큼 중간에 지루한 부분이 좀 있어서 완독을 하는데 3년이 걸렸지만 초반부와 중후반부에는 너무 재밌어서 후다닥 읽었다.
핑거 스미스 초반부는 영화 아가씨와 배경만 다르고 거의 비슷해서 재밌게 읽었다. 젠틀먼과 모드가 결혼식을 올리고 수잔이 정신병원에 가기 전까지가 너무 지루해서 여기서 거의 2년 걸린듯하다…
이후 모드가 석스비 부인의 집을 탈출해서 런던에서의 하룻밤 모험과 출생의 비밀, 수잔의 정신병원 생활과 탈출 이야기도 매우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핑거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 소설을 위장한 2000년대 초반에 쓰인 현대 소설로 읽는 동안 진짜 빅토리아 시대에 쓰인 소설인 줄 알았다. 작가 세라 워터스가 빅토리아 시대 소설에 관한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은 만큼 철저한 조사를 통해 생생하게 고증한 노력이 여실히 보인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또한 번역도 너무 깔끔하고 찰지게 잘 되어있어서 읽는 내내 이거 한국인 작가가 쓴거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3년 만에 완독 해서 재미없었나 싶겠지만 사실은 너무 재밌게 읽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 아가씨와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와 더불어 스토리 자체가 너무 탄탄하고 빅토리아 시대 영국 문화도 엿볼 수 있어서 중간에 포기할 뻔도 했지만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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